[이기적 유전자] 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카테고리: 이기적 유전자
📌 진화 : 가장 근본적인 질문의 대답
개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찰스 다윈은 진화에 대해 알아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했다. 이에따라 우리는 더 이상 미신에 의지해 대답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특정 논점에 대하여 진화론이 초래하는 결과를 살펴보기 위해 쓰였다.
저자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콘라트 로렌츠, 로버트 아드리 등은 진화에서 중요한 것이 종의 이익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가정을 했다.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 우선 이 논의가 어떤 종류인지 간단히 설명한다. 성공한 시카고 갱단의 남자가 있으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세상에서 수백만년동안 생존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유전자에 어떤 성질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비정한 이기주의’이다. 보편적 사랑이나 종 전체의 번영은 진화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말한다. 우리가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루지는 않는다.
✅ 저자는 인간의 존재가 유전자의 이기주의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이는 도덕성과 이타주의, 보편적 사랑의 관점에서는 암울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존재 이유를 이해함으로써 다른 동물이 보지 못했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용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생존 가능성의 증진을 의미하며, 행동에 근거해 판단한다는 것을 이해하자. 행동의 심리적 동기는 알 수도 없으며 논의 대상도 아니다. 다만 행동이 행동자의 생존 가능성과 수혜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지 낮추는지만 중요할 뿐이다.
<밑 부분="" 재검토="" 필요=""> ## 이기적인 행동의 예 황제 팽귄은 바다표범에게 잡아먹힐 위험성 때문에 바다에 먼저 뛰어내리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팽귄을 떠밀어버리려 한다. ## 이타적인 행동의 예 가장 흔하면서 뚜렷한 것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행동이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 새끼에게 먹이를 주며, 목숨을 걸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킨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개체 수준에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행동이 무엇인지 예를 들었따. 이제 나는 유전자의 이기성을 기본 법칙으로 개체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설명한다. # 📌 집단선택설 우선 이타주의에 관한 잘못된 설명을 지적한다.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해'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도록 진화한다."는 오해이다. 동물의 활동은 번식에 대한 활동이며, 어미는 새끼에게 자기희생을 한다. 이런 활동은 종의 영속을 위한 것이라고 추론 가능하다. 즉, 동물이 종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결론짓지만 이는 잘못이다. 다윈은 진화는 자연선택을 거쳐 진행되고 자연선택은 최적자 의 차등적 생존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최적자의 대상은 무엇인가? 이 대상이 종이라고 해보자. 종의 생존을 위해 각 개체는 희생할 수 있는 개체로 구성된 집단은 이기적 개체로 이루어진 종보다 절멸의 위험이 적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세상은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 집단선택설 이다. 이는 진화론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생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진실로 생각되온 학설이다. 반대로 정통학설은 개체선택설이며 나는 유전자선택설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개체선택론자들의 답은 이타주의자 집단 내에도 소수의 이기주의 개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다른 개체보다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낳을 수 있다. 그 자손은 이기적 성질을 이어받고, 결국에는 이기적 집단이 된다. 개체선택론자도 집단에 속한 개체의 행동이 집단의 절멸을 결정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개체들의 선견지명이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고 집단의 절멸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개체의 경쟁에 비해 집단의 절멸은 느린 과정이다. 진화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아마도 집단선택설이 매력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집단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는가에 따라 이상적 그림은 아닐 수 있다. 집단 내 이타주의는 집단 간 이기주의를 보이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자국의 영광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타인을 살상하도록 훈련받는다. 인간에 대한 살인은 큰 죄로 여겨지지만 다른 종의 일원을 먹는 것을 즐긴다. 어느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한가? 집단의 범위는 어디인가? 인간 윤리의 혼란은 진화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수준에서 이타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생물학적인 문제와 혼란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자와 영양은 포유강의 일원이다. 따라서 사자는 포유동물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죽이지 않아야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척추동물 전체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새나 파충류도 죽이지 않아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으로 집단선택설의 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개체의 이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설명해야하는 부분이다. "톰슨가젤이 겅중겅중 뛰는 도약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집단선택설 뿐이다" 실제로 개체의 이타주의적 행동은 존재한다. 다음 장에서 이러한 행동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서,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정통 이론이며, 전개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생명 그 자체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한다.[맨 위로 이동하기](#){: .btn .btn--primary }{: .align-right}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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